생활예절(100문100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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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예절(100문100답)

1

우리나라의 전통 예절서적은 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많은 책을 썼으므로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읽히고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이씨조선조 4대 세종대왕 때 왕명을 받은 허조(許稠1369∼1439) 등의 고금(古今)의 예서(禮書)와 홍무예제(洪武禮制)를 참작하고, 두씨통전(杜氏通典)을 본따서 편찬에 착수했고, 7대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 1424∼1483) 등이 이어서 길·가·빈·군·흉례(吉·嘉·賓·軍·凶禮) 등 五례 중에서 실행해야 할 것을 택해 도식(圖式)을 편찬 탈고한 것 1474 년 성종 때에 신숙주·정척(申叔舟·鄭陟) 등이 왕명을 받아 완성했습니다.

내용은 주로 왕가(王家)의 제례의식인 길례(吉禮), 혼례의식인 가례(嘉禮), 연회·접빈(宴會·接賓) 의식인 빈례(賓禮), 군사 의식인 군례(軍禮), 상중(喪中) 의식인 흉례(凶禮) 등으로 되어 있으며, 일반 사대부(士大夫)의 관혼상제와 음주례(飮酒禮) 등을 간략하게 첨가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사가(私家)에서는 참고하기가 어려운 왕가의례(王家儀禮) 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례집람(家禮楫覽) :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선생이 1599 년 52세때인 이조 선조 32년 9월에 중국 송대(宋代)의 학자 주자 (朱子)의 가례(家禮)를 바탕으로 가정의례(家庭儀禮) 전반에 걸쳐 그때까지의 여러 학설과 풍속 및 자기의 의견 등을 곁들 여 우리나라의 예설(禮說)을 집대성한 예의 이론서로서 모두 11권 6책으로 되었으며, 특히 제1권에 의례전반에 대한 도설 (圖說·도해)을 실어 이용에 편리합니다. 내용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가묘(家廟)제도와 성년의식인 관례(冠禮), 결혼의식인 혼례(婚禮), 초상 치르는 상례(喪禮), 제사의식인 제례(祭禮) 등 일반 가정의 의식절차에 대해 자상하게 밝히며,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 와 여러 가지 학설등을 비교 수록했고, 우리나라에서 행하는 습속(習俗) 등도 곁들였습니다. 따라서 가정의례에 대해 이론적인 연구나 원류(原流)를 아는데 필수적인 책입니다.

상례비요(喪禮備要) : 위 가례즙람을 저술한 사계 김장생선생이 36세때인 선조16년에 완성한 1권으로 된 간편한 책입니다. 내용은 주로 초상(初喪)부터 치장(治莊)까지의 절차를 상세히 서술하고, 상중제례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습니다. 현재도 상례에 있어서는 이 '상례비요'가 지역이나 가문에 관계없이 널 리 참고자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사례편람(四禮便覽) : 가정의 관·혼·상·제 대하여 이씨 조선 조 숙종때에 이재(李縡1680∼1746)가 편찬한 것을 1844년에 그 증손 이광정(李光正)이 간행했고, 1900년에 황필수·지송욱(黃泌 秀·池松旭)등이 이것을 증보하여 '증보사례편람'이라 했습니다.

가례집람의 이론을 따라 행하기에 편리하게 찬술한 것이 특색으로 모두 8권 4책으로 되었습니다

 

2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학자(禮學者)로 사계 김장생(沙溪 金 長生) 선생을 이르는데 그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계선생은 1548년 이조 명종 3년에 출생하여 1631년 인조 9년에 84세를 일기로 졸했습니다.

13세때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 선생에게 사사(師事)해 사서·근사록(四書·近思錄)을 배웠고, 20세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 선생에게 사사해 수제자가 되었으며, 평생을 경서(經書)와 예문(禮文)을 탐구해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학문하는 태도가 간절하고 정밀·겸허해서 의심나는 점을 적출해 해석하는데 힘썼으므로 저서의 제목에도 경서변의(經書辨疑),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전례문답(典禮問答), 의례문해(儀禮問解) 등과 같이 "疑"와 "問" 등의 문자를 쓰고, "辨" "釋" "答" "解" 등과 같이 궁금증을 풀어 해석하는 성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상례비요(喪禮備要)", "가례집람(家禮輯覽)"등 예서(禮書)를 저술해 우리나라 가정의례에 바탕을 세웠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힘써 그 문하에서 金椎, 安時烈, 安浚吉, 張維, 崔鳴吉, 安國澤, 金 등 거유가 나고 모두 285명의 후학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성균관과 지방, 향교 등 문묘(文廟)에 모셔진 우리나라 유현(儒賢) 18인중 沙溪, 愼獨齊, 尤庵, 同春 등 본인과 문하에서 4인이 종사됐다는 사실이 주목됩니다. 1717년 이조 숙종 43년에 문묘에서 종사하는 교지(敎旨)에 선생을 일러, "-깊고 오묘한 禮文과 어렵고 의심나는 學問은 또한 자세하게 해석하였고, 吉한 일과 凶한 일의 禮節은 모든 사람의 의논을 절충하지 않음이 없어 크고 작 거나 높고 낮거나 한 모든 이가 다 같이 혜택을 입으니 그 높고 큰 모습이 온 세상에 泰山고 北斗같이 높았고, 해와 달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 같도다-." 했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근대의 석학인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 선생이 지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도 선생을 일러 "朝鮮禮學의 宗" 이라 했으니 우리나라 예학에서는 사계 김장생 선생이 으뜸이라 하겠습니다.

 

3

자기의 부모를 남에게 말할 때 '아버지' '아버님' '애비'를 어떻게 구분해야 합니까?

남의 부모를 말할 때는 높이지만 자기의 부모를 남에게 말 할 때는 높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버님' '어머님'과 같이 '님'을 붙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아버지' '애비'를 골라 써야 하는데 대화 상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부모의 윗대(上代)인 조부모, 증조부모, 외조부모에게 말할 때는 '애비' '에미'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나에게는 부모지만 그들에게는 자식이기 때문에 낮춰 말합니다. 기타의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아버지' '어머니'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설사부모의 어른이라도 부모의 형이나 누님, 촌수가 먼 방계의 윗대 분에게 말할 때도 '아버지' '어머니'가 맞습니다. 물론 옛스럽게 호칭하려면 아버지는 '가친(家親)'이 통상적이고 어머니는 '자친(慈親)'이라고 해야 좋습니다.

 

4

부모에게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의례준칙의 지방 쓰는 법에 "아버님 신위, 어머님 신위"라 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지요?

옛날부터 부모를 문서(文書)에 쓸 때는 '님'을 붙였습니다. 예컨대 편지에 '父主前 上書'라 썼는데 '主'는 '임금주'로서 '님'이란 뜻입니다. 고례의 돌아간 아버지의 위패에도 ' 考學生 君'이라 썼는데 '君'은 '임금군'으로서 역시 '님'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주(지방)에 '아버님', '어머님'이라 쓰거나, 편지에 '아버님 보세요', '어머님 읽으세요'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5

회사의 상무님에게 저의 과장님을 말할 때 "저희 과장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고 말했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자네는 자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말할 때, '아버님'이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직근 상급자를 그 분의 상급자에게 말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과장도 상급자이고 상무는 과장의 상급인 것입니다. 이런 경우 몇 가지 유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⑴ 과장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⑵ 과장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⑶ 과장이 이렇게 하셨습니다.

⑷ 과장이 이렇게 했습니다.

⑸ 과장님께서 이렇게 했습니다.

⑹ 과장님이 이렇게 했습니다.

⑺ 과장께서 이렇게 했습니다.

위와 같은 경우 '하셨습니다'는 우선 피해 그냥 '했습니다' 가 좋습니다. 대화 상대자의 아랫 사람의 행위를 극존대어로 말하는 것은 일단 옳지 못합니다.

다음 '과장님께서'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님'과 '께서'를 쓰면 2중의 존대가 되어 그 분의 웃어른이 듣기 거북합니다. 그럼 '과장님'을 고려해 보면 '님'은 과장의 직급자에게는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혈연관계가 없이 인격대 인격의 직장관계에서 '과장'이라고 해버리기엔 상급자인 과장에 대한 지나친 비하라 하겠습니다. "과장께서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과장의 동태의 일부분에 약간의 존대말을 써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6

남편은 자기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 하는데 며느리는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남존여비의 관습적 호칭이 아닌지요?

옛날부터 친 자녀가 자기의 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게 한 것이 바로 며느리의 호칭과 혼동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친 자녀가 부모를 부를 때는 예(禮)와 경(敬)보다 친(親)함이 앞서고, 며느리는 혈연관계가 아닌 결연(結緣), 즉 인척관계임으로 친함보다 공경과 예절이 앞서야 하기 때문에 '님'을 붙이는 것이지 남존여비 관념이 아닙니다.

친 자녀는 친함이 앞서기 때문에 '님'을 붙이지 않습니다. 며느리와 딸이 함께 앉아서 똑같이 '어머님'이라 부르면 누가 딸이고 누가 며느리인지 대화를 듣고는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어머님'이라 부르고 딸은 '어머니'라 부르면 금방 식별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호칭법은 매우 합리적이라 여겨지지 않습니까?

 

7

고례의 상례 복례(喪禮 服禮)에 상장(喪杖)을 왜 짚으며, 대나무, 오동나무 또는 버드나무로 만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대개 아버지의 상을 당해서 입는 참최복(斬최服)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 입는 자최복에는 오동(桐)이나 버들(柳)로 된 지팡이를 짚습니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지극한 슬픔으로 음식을 전폐하고 오로지 호천 망극할 따름입니다. 때문에 건강을 상하고 몸을 지탱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또한 지극한 효자는 병을 얻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몸을 의지해 장례절차를 마치려면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그만큼 슬픔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아버지의 상에 대나무(竹) 지팡이를 짚는 것은 ⑴ 아버지는 아들의 하늘이고, 하늘은 둥근데 대나무는 안팎이 둥글어 하늘을 상징하고, ⑵ 대나무 안팎으로 마디가 있는바 슬픔 또한 안팎이 찢어지듯이 아프며, ⑶ 대나무는 四시절 푸른 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함이 춥고 더움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며, ⑷ 밑동이 아래로 가게 짚는 까닭은 나무의 서있는 이치를 따름이니 부모의 죽음이 자식에게 큰 슬픔이 되는 것도 이치입니다. 어머니의 상에 오동나무(桐) 지팡이를 짚는 것은 ⑴ 桐은 같다는 뜻의 同자와 음이 같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버지의 죽음과 같다는 뜻이고, ⑵ 오동나무는 겉에 마디가 없는바 한 가정에는 어른이 둘일 수 없고 어머니는 아버지 다음이므로 마디없는 나무를 쓰며, ⑶ 밑동을 四각으로 깎는 까닭은 어머니는 땅이고, 땅은 각(角 天圓地方)졌다는 상징입니다.

오동나무가 없으면 버드나무(柳)로 대신 쓰는 까닭은 한가지라는 뜻의 類자와 같은 음 이므로 오동나무의 경우와 같은 뜻입니다.

 

8

여자의 절에는 큰절과 평절이 있는데, 남자에게도 큰절과 평절이 따로 있습니까?

禮書에 보면 여자의 절을 숙배(肅拜)라고만 했지 큰절, 평 절의 구분이 없고, 숙배는 큰절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남자의 절에 계수배(稽首拜·큰절), 돈수배(頓首拜·평절), 공수배(空首拜·절)의 구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의 절에 큰절과 평절이 행해지는 까닭은 생활 습속으로 지방에 따라 행해지던 여러 가지 절의 모습에 따라 보다 정중하고 깊은 절을 큰절로, 간편한 절을 평절로 구분해, 절을 받는 어른이 절을 하는 아랫사람을 편하게 해 주려고 간편한 동작의 절을 허용한 것이 평절로 굳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1599년에 저술된 우리나라의 禮書인 가례집람(家禮輯覽)에 보면 우리나라의 절로 숙배(큰절)가 소개됐고, 평절로는 주자(朱子·중국 宋대의 학자)의 말씀으로 평절과 닮은 절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음을 미루어, 큰절은 우리나라의 원 절이고, 평절은 고대 중국식의 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9

어떤 이가 여자가 공수(拱手) 할 때에 왼손이 위로 간다면, 그 이유를 여자는 일을 하는 오른손은 거칠고 왼손은 고우므로 고운 왼손으로 거친 오른손을 덮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까?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생활예절을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남좌여우(男左女右), 또는 남동여서(男東女西)라고 해서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게 맞잡는 것이 우리의 유구한 생활문화를 통해 정착된 것이며, 또한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남향(南向)하는 것이 생명보존을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는 방향)이고, 그렇게 하면 뒤가 북(北)이고, 앞이 남(南)이며 좌측이 동(東)이고 우측이 서(西)가 됩니다.

동쪽은 해가 뜨고 밝음이 오니 양(陽)이고 서쪽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드니 음(陰)이며,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입니다.

양인 동쪽이 좌측이므로 양인 남자는 좌측을 숭상해 왼손을 앞세우는 것이고, 음인 서쪽이 우측이므로 음인 여자는 우측을 숭상해 오른손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10

전에 신문에서 보니까, 어떤 저명인사가 "직장에서 여직원 을 '김양', '박양'이라 부르니까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져서 '미스 김' '미스 박' 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옳습니까?

한국 내의 한국인의 직장에서 한국인끼리 서양 호칭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김양', '박양'이 어색하다는 그 분은 외모는 한국인이라도 정신은 서양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미스 김', '미스 박'이 더 부끄럽게 느껴져야 할 것입니다. 누가 뭐라하든 '김양', '박양'은 우리말입니다. 양(孃)은 여자의 존칭이며 순수한 우리말로 "아씨"와 통합니다. 한국인끼리의 호칭에 한국어를 쓰는 것이 어색해서야 되겠습니까?

 

11

저는 50대 후반으로 더러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려 집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모르는 분을 어떻게 부를지 곤란합니다. 역시 '할아버지'라 불러도 될까요?

모르는 노인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바른 호칭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애칭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한 호칭이 있는데 굳이 그것을 쓰지 않고 딴 호칭을 찾을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보다 5살이내의 사람이면 '형씨', 5살에서 10살정도면 '형장(兄丈)' 또는 '선생', 10살에서 15살 정도면 '노형(老兄)', 15살 이상이면 '어르신네' 또는 '노인장'이 좋습니다.

 

12

저는 시누이와 함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시누이를 '아가씨'라고 불렀더니 시누이와 점원아가씨가 함께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혼동이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아가씨'란 말은 현재 친척이 아닌 남의 처녀를 부를 때 쓰여지고 있습니다. 또 본래의 시누이의 호칭은 '아가씨'가 아닌 '작은 아씨'입니다. 시장에서 '작은 아씨'라고 불렀더라면 점원이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3

시부모님에게 남편을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아이가 있으면 '아빠'라고 하는 것이 일반인데 저는 아이도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인 저를 부를 줄을 모릅니다. 어떻게 부를 까요?

설사 아이가 있더라도 '아빠'라하면 안됩니다. '아빠'는 자기의 어린아이에게 남편을 말할 때나 쓰는 것입니다. 시부모에게 남편을 말하려면 '사랑'이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부부간에는 거처(居處)로 말하니까 '사랑방에 있는 사람' 이란 뜻입니다. 어른에게 아내를 말할 때 '제댁'이라 합니다. '저의 집사람'이란 뜻입니다.

 

14

결혼하기 전에는 '○○○씨'라고 서로 불렀습니다.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까 호칭이 궁색합니다. 좋은 호칭을 가르쳐 주십시요.

한국인이 한국인의 호칭을 놔두고 무슨 호칭을 달리 알으려 하십니까? 직접 부를 때는 '여보'이고, 대화 중의 지칭(指稱)에는 '당신'이라고 우리 조상 대대로 불러 왔습니다. 더 점잖게 부르려면 아내를 '부인'이라고 하면 됩니다. '여보'는 '여기 보세요'의 준말이고, '당신'은 '그대 본인'이란 뜻입니다. 젊은 부부가 어른스럽게 '여보' '당신' 이란 말로 부르려니까 부끄럽다고도 합니다만 당연 한 호칭을 쓰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15

TV에서 보니까 결혼한 시동생을 '아주버님'이라고도 하고 '서방님'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것이 맞습니까?

그런 질문이 많습니다. 메스컴에서 생활문화면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지요. 남편의 형제에 대한 호칭이 '서방님'과 '아주버님'인데 남편의 형은 '아주버님'이고 결혼한 시동생은 '서방님'입니다. 시동생이 결혼하기 전에는 '도련님'입 니다.

 

16

시부모님 앞에서 친정부모를 '아빠', '엄마'라고 했더니 '엄마 아빠가 뭐냐'고 걱정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자니 시부모는 '아버님' '어머님' 이라 하면서 친정부모는 낮추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쁩니다. 어떻게 말해야 옳습니까?

남녀간에 자기를 낳으신 부모를 말할 때 '아버님' '어머님' 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라 합니다. '님'은 상대를 높여 부르는 禮스러움인바 부자간에는 예보다 친(親)함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시부모를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님'을 붙이는 것은 친함보다 예(禮)가 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부모앞에서 친정부모를 말할 때는 '친정아버지' '친정어머니'라고 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우리의 원 호칭은 친정은 '본곁'이라 하고 아버지는 '밭어른', 어머니는 '안어른'이라 말했습니다.

'본 곁의 밭어른께서', '본곁의 안 어른께서'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밭어른' 이란 '바깥 어른'이란 말입니다.

 

17

친구 '미스 朴'이 있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미스 朴좀 바 꿔주세요"라고 했더니 "우리 회사엔 '미氏'가 없습니다" 고 탁, 끊어버렸습니다. 기분 나빴습니다. 뭐라고 부를까요?

상대방이 불친절했군요. 그러나 그 불친절을 새 길 필요 가 있습니다. 한국사람끼리의 호칭에 서양식을 했으니까 그런 반응이 나온 것입니다. 아마도 상대방은 한국인의 주체사상이 철저한 분이신가 봅니다. "朴 O O 양이 있으면 바꿔주세요"라고 말해 보세요. 친절하게 바꿔드릴 것입니다.

 

18

가례집람(家禮輯覽)에 대해서 자상하게 알려 주십시오.

가례집람에 대해서는 본 자료 15집 4면에 소개했었습니다 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문묘에 종사된 우리나라의 18현중에 沙溪선생(諱 金長生)과 愼獨齊선생(諱 金集)부자분 두 분이 계십니다. 두 분이 대를 이어 예학에 끼친 업적이 지대합니다만 특히 사계선생을 '우리나라 禮學의 宗長'이라 추앙하고 있습니다. (六堂 崔南善著 朝鮮常識問答) 그 사계선생께서 52세때인 1599년에 저술한 禮書가 '가례집람'입니다. 모두 11권에 5책으로 된 바 제1권에 의례전반에 관한 도설(圖說)이 실려있어 이해에 편리합니다. 내용은 당시 우리나라의 朝野에서 숭상준행하던 중국 宋대의 학자인 朱子의 家禮를 해설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풍습으로 행해지던 각 가지 습속과 여러 학자의 학설 및 당신의 견해를 곁드려 한국 주체적인 색채가 농후한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의 禮書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민간본으로 완벽한 이론서로서는 이것이 처음이며, 기타의 禮書는 거개가 가례집람 이후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그 논거(論據)를 여기에 두고 있어 가위 '禮書의 宗'이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국역(國譯) 간행이 안되어 아쉽습니다. 古本 사계문집, 영인(影印), 사계·신독재전집 등에 있습니다.

 

19

술을 마시는 데도 예절이 있습니까? 주도(酒道)를 말씀해 주십시요?

우리가 음식을 먹는 데에 禮가 따르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술은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정신이 혼미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더욱 예절이 엄격합니다. 우리나라의 酒道는 향음주례(鄕飮酒禮)로 대표됩니다. 향교, 서원, 관아(官衙) 등에서 춘추로 관내의 선비들이 모여 엄격한 음주의 예절을 하나의 의식으로 행했습니다. 이런 의식절차가 몸에 배이면 평소의 음주에도 예절을 바르게 할 것이라는 배려라 하겠습니다. 술은 처 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거듭되면 술이 술을 마시고, 지나치면 술이 사람을 마셔 망신시키고, 못 참으면 술이 처자(妻子)까지도 마시게 되어 패가합니다. 술이 술을 마시는 단계에 이르지 않도록 사람이 술을 마시는 단계에 머무는 것이 酒道이 으뜸입니다.

 

20

저는 어른에게 "수고하십시요"라고 인사했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까?

"수고하십시요"는 일을 하라는 말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의 일을 해드리지는 못할 망정 일을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상사 보다 먼저 퇴근하면서 "수고하십시오" 하면 "저희는 먼저 나가면서 나보고만 일을 하란다"고 언짢아 할 것입니다. "전 먼저 나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등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에게 일이 끝난 뒤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수고를 위로하는 인사라 괜찮습니다. 같은 '수고'라는 말도 미리 말하면 미리 말하면 하라는 뜻이고 뒤에 말하면 위로의 뜻이 되겠습니다.

 

21

저의 손아래 매부(누이동생의 남편)가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호칭과 말씨를 가르쳐 주십시오?

사위에게 있어 처가의 어른은 직계존속(장인 장모등) 뿐이고 기타는 일반 사회적 관계입니다. 질문의 경우 손위 처남이기는 하나 나이가 자기보다 적으니까 '형님'이라 부르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반말을 하자니 손위이라 난처하며, 질문자의 처남의 위치에서도 반말을 하자니 매부가 나이가 많고 존대를 하자니 손아래라 역시 난처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가까운 남매간인데 어정쩡하게 지낼 수도 없고 대책이 있어야겠습니다. 원칙 적으로 배우자의 친척과 나의 관계는 배우자와의 관계로 설정됩니다. 손아래 매부와 손위 처남은 남매간이지만 처가의 어른은 직계존속뿐이라는 전제로 그냥 친구입니다. 따라서 10년이내의 차이라면 '자네' 00서방'(이름)이 호칭이고 '하게'의 말씨를 쓰면 됩니다.

 

22

"아버지가 야단쳤어요"라고 말했다가 버릇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같은 뜻의 말이라도 어휘의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야단쳤다"는 말은 "아버지가 밥먹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질문자가 생각해도 "아버지가 밥 잡수셨다" "아버지께서 진지 잡수셨다"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어휘인지 짐작될 것입니다. 밥은 진지, 먹었다는 잡수셨다가 좋지 않습니까? '야단쳤다' 보다는 '걱정하셨다'가 맞는 말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어른이 근심(걱정)을 하시는 것이지, 내가 잘못한 것을 꾸중하신 것은 아닙니다. 어른은 아랫 사람이 잘못하면 근심·걱정을 하십니다.

 

23

시집가는 신부가 시부모에게 드리는 폐백에 밤, 대추, 닭, 술을 준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시아버지에게는 밤과 대추를 올리고, 시어머니에게는 닭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禮書에 보면 시아버지에게는 대추, 밤, 육포(肉包)를 올리고 시어머니에게는 옷을 지어 올리거나 비단을 드린다고 했습니다(曲禮) 육포대신 꿩을 쓰기도 했고 근래에는 꿩 대신 닭으로 쓰는 것이 관례로 되었으며, 밤과 대추는 시아버지, 닭은 시어머니에게 드립니다. 대추와 밤을 폐백으로 쓰는 이유는 대추는 부지런하겠다는 뜻이고 밤은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겠다는 뜻(家禮輯覽·按春秋云)이므로 시부모에 대한 며느리의 서약이라 하겠습니다.

술은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이 아니고, 폐백을 받은 시부모가 며느리를 맞는(소님 맞이) 禮로서 술을 내리는 것입니다(舅姑禮之).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일은 잘못된 일입니다.

 

24

근래 혼인 전날에 신랑측에서 채단이든 함을 신부측에 보내는데, 그것을 "함을 사라" 외치며 실랑이가 심합니다. 전통예절에도 그런 법이 있습니까?

채단이란 신랑이 아내를 맞기 위해 신부댁에 드리는 폐백입니다. 정결한 아낙은 禮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正潔之女 非禮則不行)고 했습니다. 신랑이 신부측에 드리는 함이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이 엄격한 의미에서 같은 성격의 것입니다. 신랑이 함을 판다면 신부도 폐백을 팔아야 할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예물인 함을 어떻게 팔겠습니까? 참말로 근절해야 할 천박한 폐단입니다.

 

25

근래 조상의 제사를 초저녁에 지내는 경우가 흔하게 있습니다. 만약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전날의 초저녁에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질문을 하시게 된 동기는 전통예법상의 제사가 돌아 가시기 전날의 밤중에 지냈었으니까 초저녁에 지낼 때도 전날의 초저녁이 맞는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나 전통제례도 준비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중에 했지만 실제 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돌아가신 날의 첫새벽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정적인 초점은 축문을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諱日復臨)"라고 쓴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지내는 시간이 낮이든 밤이든 반드시 돌아가신 날에 지내야 합니다.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날의 초저녁이 맞습니다.

 

26

혼인의례에도 사례(四禮), 가례(家禮)도 四禮라고 말하는데 四禮라고 하면 혼례입니까, 아니면 가정의례입니까?

혼인에서의 四禮란 원래의 六禮인 周六禮가 번잡하다고 朱子가 四禮로 조정한 데서 연유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四禮라고 말할 때는 婚禮가 아닌 가정의례를 말합니다.

가정의례는 줄여서 家禮라고 말하며 성년의식인 冠禮, 결혼절차인 婚禮, 초상을 치르는 喪禮, 죽은 이를 기리는 祭禮 등 크게 四禮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家禮에도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祠堂禮, 일상생활의 구준예절인 居家雜儀가 있어 六禮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家禮에서는 祠堂禮(制)는 祭禮의 일 부분으로 이해하고, 居家雜儀는 부록정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27

어른을 모시고 택시나 자가용 등 승용차를 탈 때 문제가 있습니다. 어른이 타고 내리기에 편리하게 인도(人道)쪽으로 모시려면 아랫사람이 먼저 타야 하니 실례이고, 어른을 먼저 타시게 하면 내릴 때는 아랫사람이 먼저 내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승용차는 운전기사의 옆자리인 앞에 한 사람, 뒤에 세 사람, 모두 네 사람이 탑니다. 그런데 어디가 上席인가는 택시와 고용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으로 같고, 자가운전하는 자가용은 다릅니다.

자가 운전하는 자가용의 경우는 운전석의 옆자리인 앞에 제일 上席인 1번이고, 뒷좌석의 인도쪽인 우측이 2번이고, 차도쪽인 좌측, 즉 안 쪽이 3번이고, 뒷좌석의 가운데가 4번 좌석입니다. 그러나 네 사람이 탈 때 제일 아랫사람이 여자일 경우는 여자를 3번 좌석에 앉히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 이유는 차의 구조가 가운데는 높은 축이 있어 발을 벌리고 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가운전이 아닌 자가용이나 택시의 경우는 뒷좌석의 우측인 인도쪽이 제일 上席인 1번 좌석이고, 좌측이고 안쪽인 차도쪽이 2번 좌석이고, 뒷좌석의 가운데가 3번좌석이며, 앞자리인 운전기사의 옆자리가 4번 좌석입니다. 역시 차례대로 앉을 때 여자가 뒷좌석의 가운데에 앉게 될 때는 앞 자리나 차도쪽 자리와 바꾸는 것이 예의입니다. 만일 승용차가 '짚' 차라면 자가운전이 아니라도 운전기사의 옆 자리인 앞이 上席인 1번 좌석이 됩니다. 그러니까 '짚'차의 경우는 자가운전하는 승용차와 같이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28

'사돈'과 '사장어른'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사돈이란 혼인으로 인해서 맺어지는 인척(姻戚)관계를 말 합니다. 같은 사돈이라도 일가간에 항렬(行列)이 있듯이 사돈의 항렬, 사행(査行)이 있어 그 호칭이 달라집니다.

시집간 아낙의 시부모와 친정부모는 같은 세대(世代)인 동행(同行)이므로 '사돈' 이라 말합니다. 다만 안사돈이 바깥사돈을 부르려면 '사돈어른'이라 하고, 바깥사돈이 안사돈을 부를 때는 '사돈어른' 또는 '사부인'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시집간 아낙의 시조부와 친정아버지는 세대가 달라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이므로 부자 '父子'의 항렬에 해 당합니다. 그래서 '사장어른(査丈)' 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형수의 동기간이나 누님의 동기간은 같은 세대니까 '사돈' 이지만, 형수나 누님의 시부모나 친정부모는 '사장어른'입니다. 역시 사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29

학생시절에는 한 학년만 위라도 깍듯이 '형'이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1∼2년 먼저 입사한 선배도 '형'이라고 깍듯이 존대해야 합니까?

사회생활은 위계질서가 분명히 지켜져야 혼란이 없습니다.

옛 성인 맹자(孟子)의 말씀에 "조정에서는 벼슬의 높낮이로, 사회생활엔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사람들을 키우는 데는 학덕이 있고 없음으로 위계를 삼는다."라고 했습니다.

직장은 조직사회이고 맹자께서 말씀한 조정에 해당합니다. 직장에서 위계질서는 첫째 직급의 상하(上下)이고, 둘째 동료간에는 연령의 고하(高下)이고, 셋째 선후배 관계가 위계확립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선배사원은 신입사원인 나보다 확실히 직장에서의 학덕이 많은 사람이니 존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배가 후배에게 친구로 지내기를 양해할 때는 그때부터 동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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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가다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는데 노인을 어떻게 불려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할아버지, 어르신네, 노인장, 노인어른, 어느 것이 맞습니까?

근래 바깥노인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고는 하나 썩 좋은 호칭은 아닙니다. '할아버지'란 손자나 손자뻘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나 할아버지 뻘되는 친족간의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남을 할아버지가 부릅니까? 질문하신 경우와 같이 禮스러운 호칭을 사용하려면 '노인장(老人丈)'이 좋습니다만 '장'은 어른이란 말이므로 순수 우리말로 '노인어른'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르신네'는 일반적으로 부모의 친구를 부를 때에 쓰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31

각종 간행물에 보면 한식, 추석, 설날 등에 조상을 받드는 예를 '제사'라고 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차례'라고도 하는데 어떤 것이 맞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제사(祭祀)와 차례(茶禮)는 지내는 경우 와, 상차림, 지내는 절차등이 엄연히 다릅니다. '祭'자를 쓰는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忌祭祀)와 제사 받드는 한계가 지난 웃조상(五代祖上以上)의 세일사(歲一祀·墓祭)와 조상의 사당을 모시는 경우의 시제(時祭)라고 해서 춘하추동 4계절의 가운데 달에 지내던 제사만을 말합니다.

기타의 설날, 동지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사다에 참배하는 정지삭망참(正至朔望參)고 기타 명절에 계절식을 받들어 올리는 속절즉헌이시식(俗節則獻以時食)은 차례(茶禮)라고 합니다.

제수(祭羞), 상차림도 제사에는 메(제사밥)와 갱(제삿국)을 쓰지만 차례에는 메와갱을 쓰지 않고, 계절특식을 쓰는 것입니다. 설차례를 '떡국차례'라 하고 추석에는 송편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지내는 절차는 제사는 술을 세 번 올리고 반드시 축문(祝文)을 읽는 삼헌독축(三獻讀祝)이고, 차례는 술을 한번만 올리고 일반적으로 축문을 읽지 않는 단헌무축(單獻無祝)입니다. 이제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말해야 되고, 지내는 절차와 상차림도 격에 맞게 해야 되겠습니다.

 

32

한식과 추석의 차례를 산소에서 지내듯이 설차례도 산소에 가서 지내도 됩니까?

원래의 차례는 장자손(長子孫)이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 당에서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었는데 근래 사실상 사당을 모신지 않는 경향이 많아지면서 기왕에 성묘(省墓)를 하는 길에 지내는 습속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한식이나 추석은 일반적으로 마른(乾) 음식으로 상차림을 하고 춥지 않으니까 산소에서 지내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설 차례는 떡국을 올려야 하므로 식어서는 아니 될 것이고, 날이 추워 산소에서 지내기가 쉽지 않아 집에서 위패, 사진, 지방을 모시고 지내는 것이 관례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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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딸만 3자매인중에서 둘째딸의 남편입니다. 저보다 3살위인 손위동서를 형님으로 불러야 한다고 해서 '형님'이라 부르고 대접했습니다. 처제가 결혼하면 처제의 남편에게서 '형님'이라 불리우고 대접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처제가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인 손아래동서가 저보다 1살이 위입니다. 여자는 시댁의 윗동서가 나이가 적더라도 형님이라 하니까 저의 손아래동서도 처형의 남편인 저를 나이가 적더라도 형님이라 불러야 하 는 것이 아닙니까?

결론부터 말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귀하 가 3살위인 손위동서를 형님이라 부른 것도 우리의 전통예절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속담이 거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위에게 있어 처가의 어른은 아내의 직계존속뿐입니다. 기타의 아내의 친척은 모두 사회적 사귐이지 서열을 따져서 위계질서를 지키지 않습니다. 처남이나 처형 처제의 남편인 동서들과는 아내와의 관계에 따라서 형님 동생하지 않고 나이에 따라 대접합니다. 3살정도 손위라면 당연히 '자네'라 부르고 '하게'를 해야 합니다. 귀하의 경우 한 살이 위인 손아래 동서와도 당연히 벗을 터서 친구같이 지내야 합니다.

 

34

어른들 대화 중에 '벗을 튼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나이에 따라 친구 같이 지내는 한계가 있는 것 같은데 몇살 사이까지 벗을 터서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동양의 고전인 '논어(論語)'에 보면 "나이가 배가되면 아버지같이 섬기고(年長以倍則父事之), 10년이 위이면 형님으로 모시고(十年以長則兄事之),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해서 따른다(五年以長則肩隨之)" 고 한 것이 나이로 상대를 대접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배가 된다는 것은, 성인의 경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성인이 되는 나이는 15세에서 20세까지 관례(冠禮·성년의식)를 치르는 법도로 보아 최소한도 15세는 되어야 성인이 되는 것이니까 자기보다 15세이상 많은 사람은 아버지같이 모셔야 할 것입니다.

둘째, 자기보다 10년이상 15년까지는 형님으로 모셔야 하니까 같이 걸을 때도 한발 뒤에 처져서 따라야 도리에 맞습니다. 아버지로 모실 나이는 아니고 10년이 넘어서 친구로 지낼 수도 없는 사이를 '노소(老小)'간이라 해서 '노형(老兄)' '소제(小弟)'라고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5년이 연상이면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지는 않아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있으나,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약간 처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연장자가 양해하면 5년이상 10년까지는 친구로 지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연장자이지만 5년이하라면 친소에 따라 당연히 친구가 되는 것이니까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5년이상 10년까지의 나이차이가 문제입니다. 이른바 "벗을 튼다"는 말도 엄격한 의미에서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물론 형님 동생의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연한 친구일 수도 없으므로 당사자간에 친구같이 지내기를 결정하면 '벗을 튼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서로 존대하며 지내야 합니다.

'벗을 튼다'는 것은 연장자가 친구, 그러니까 '벗'이 되기를 양해한다는 말입니다. 10년까지는 벗할 수 있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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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가인 조카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습니다.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요?

그런 경우를 '연고행비(年高行卑.나이는 많은데 항렬은 낮다)'의 경우라고 합니다. 조카뻘이면 당연히 조카대접을 해야 할텐데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부를 때는 "조카님"이라고 하고 말씨는 존댓말을 써야 합니다. 상대방 위치에서는 귀하가 아무리 나이가 적더라도 아버지와 같은 서열이기 때문에 깍듯이 "아저씨"라 부르고 역시 존댓말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세대와 나이를 대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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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결혼식때 한 친구가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고 와서 창피해 혼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살을 찌푸려 잔치분위기를 망쳤습니다. 그 친구가 잘못입니까? 저의 생각이 잘못입니까?

있을 법한 일입니다. 기쁜 행사에 참석할 때는 화사한 옷을 입고 슬픈 행사에 참석할 때는 역시 슬픔을 나타내는 의복을 입는 것이 손님의 예절입니다. 그러나 그만한 준비가 없다고 해서 인사를 안가는 것은 더욱 좋지 못한 일입니다.

색깔은 걸맞지 않더라도 떨어진 곳은 꿰매고 더러운 옷은 빨아서 정결하게 했더라면 귀하가 창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초상집에 울긋 불긋한 원색의 옷차림으로 가는 것도 실례이고, 잔칫집에 어두운 복장으로 참석하는 것도 실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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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부부간의 말씨가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상식화됐습니다. TV나 라디오의 드라마를 보아도 거의가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게 들립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좋은 질문입니다. 근래 각급 교육기관의 수준을 평준화한다고 작업을 하더니 말씨도 평준화해서인지 엉뚱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왕에 평준화하려면 하향(下向) 평준화보다는 상향(上向) 평준화가 바람직합니다.

부부간의 말씨만 해도 그렇습니다. 옛날이나 현대나 수준 높은 가정에서는 반드시 부부간에는 서로 존댓말을 쓰는데 영세 서민층에서는 남편은 반말, 아내는 존댓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상향평준화 해서 부부간에 존댓말을 써야 합니다. 남녀평등은 부부 대화의 말씨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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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장에 다니는 20대 중반의 청년입니다. 국민학교 동창회 모임에 갔더니 어떤 선생님은 우리들을 '자네' '하게'를 하시는데 다른 선생님은 '야' '너' '해라'를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한결같아야 할텐데, 어느 것이 맞는 것입니까?

아무리 코흘리개때 가르친 제자라도 성인이 되면 성인의 대접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로는 만 20세를 기준해서 그 이전에는 애들로 취급해 '야' '너' '해라'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일단 성년인 그 이후에는 '자네' '여보게' '하게'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별로 성년의식이 행해지지 않습니다. 冠禮를 하던 때는 관례를 하기 전에는 아이로 대하다가 관례만 끝나면 그 자리에서부터 어른대접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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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어른들을 보면 나이차이가 10년이 가까워도 '벗을 텄다'면서 '자네' '하게' 하면서 친구로 지냈는데 요사이는 약간만 나이가 많아도 깍듯이 선배로 대접받으려 합니다. 벗을 할 수 있는 기준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경우로 인해 다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하면 나이가 5년차는 까지는 당연히 벗을 하며 친구로 지낼 수 있고, 6년부터 10년까지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양해하면 서로 벗을 터서 친구같이 지낼 수 있으며, 11년부터 15년까지는 '노형' '소제'라고 해서 깍듯이 '형님'의 대접을 해야 하고, 16년이 넘으면 '아버지'와 같은 존장으로 모셔야 합니다.

이런 기준은 오랜 생활풍습으로 정립된 것이고, 문헌상의 근거로는 논어(論語)에 있는 '年長以倍則父事之 十年以長則兄事之 五年以長則肩隨之'라는 글귀입니다.

 

40

남매(男妹)간이란 남자와 여자 동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남과 매부 사이를 남매간이라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찌 처남과 매부 사이뿐이겠습니까? 올케와 시누이 사 이는 같은 여자인데도 남매간이라 합니다.

일반적인 남매간은 남자와 여자 동기간을 말하는 것이고, 배우자와 동기간과 나 사이도 배우자와의 관계로 말해 남매간이라 합니다. 처남과 매부는 처남의 위치에서 보면 매부가 남매간의 누이의 남편이니까 남매간이고, 매부의 위치에서 보면 처남이 아내와 남매간이니까 자기와도 남매간입니다.

올케와 시누이도 올케의 위치에서 보면 시누이가 남편과 남매간이니까 자기와도 남매간이고, 시누이의 위치에서 보면 올케가 자기와 남매간의 오빠나 남동생의 아내이니까 자기와도 남매간인 것입니다.

 

41

우리나라의 이름에는 거개 항렬자를 쓰는데, 요새 번지고 있는 한글이름의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또 한문 이름이라도 항렬자를 꼭 써야 합니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전래되는 항렬자는 제도는 한문식의 이름일 때 사용했습니다. 한문글씨의 모양에 甲乙丙丁이나 一二三, 또는 金水木火土 등의 순서를 따졌습니다.

그래서 이름자만 봐도 그 성씨에서 몇 세대째 자손인가를 분간할 수 있었고, 일가끼리 만나면 항렬만 보고도 아저씨 뻘인지 할아버지가 되는지 그 세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이름일 경우는 아직 그런 제도가 정립되지 않아서 곤란할 것입니다. 여하간 항렬을 넣어서 이름을 짓는 것이 위에 말한대로 더 편리한 건 사실입니다.

 

42

그간 실천예절을 통해 MBC 라디오에서 '예절의 말씀'이 매일 방송된다고 알고 아무리 그 시간에 다이얼을 맞춰도 나오지 않습니다. 전국 어디서든지 들을 수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그것은 전례연구원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방송국의 사정에 의해 방송국별로 방송되는 시간(프로)과 전국에 동시에 나가는 시간(프로)이 있습니다.

'오늘의 예절'은 서울 MBC라디오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아침 6시 50분경에 방송되므로 서울의 MBC라디오 청취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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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에 결혼했습니다. 친정에서는 조상의 제사에 여자도 참사했기 때문에 시댁의 제사에 참사하려고 했더니 "배우지 못했다"고 걱정을 들었습니다. 여자는 시댁 제사에 참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런 질문이 가끔 있습니다.

며느리는 그 집의 혈손이 아니라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큰 잘못입니다. 제상에 술을 세 번 올리는데 둘째 잔인 아헌(亞獻)은 며느리인 주부(主婦)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삽시정저(揷匙正著)라고 메(제삿밥)에 숟가락을 꽂고 시접에 젓가락을 바르게 걸치는 일도 주부가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제사때의 자손들의 배석(配席)에 신위의 우측앞인 西 쪽이 여자손의 자리입니다. 오히려 딸보다 며느리가 상석입니다. 그런데 왜 여자가 참사하지 못한단 말씁입니까? 반드시 참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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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집의 문전에 상을 펴고 짚신, 밥, 나물, 더러는 돈까지 차려놓은 집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사자(使者)밥이라고 해서 죽은 이의 영혼을 데리고 갈 저승의 사자 에게 후히 대접해야 조상이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부모를 잡아가는 저승의 사자가 그렇게 고마워서 후히 대접한단 말입니까? 따라서 사자 밥을 차리는 것을 보고 "제 부모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린 사람들"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하간 禮書에는 사자 밥을 차려놓는 의식이 없습니다. 공중도덕, 환경 문제등도 그렇고 조상을 잡아가는 사자를 대접하는 일도 우스운 일이니 안하는 것이 옳습니다.

 

46

어떤 부인에게 그 남편을 말하려면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아빠'가 쓰이는데 어색해서 묻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요사이 부부간의 호칭이 정립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전래의 좋은 호칭을 두고도 쓰지 않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아빠'는 아이들의 아빠이지 부인의 아빠가 아닌데 어떻게 부인보고 "아빠는 무엇하십니까?"라는 식으로 말하겠습니까? 부인들이 자기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 '바깥양반' '주인양반'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호칭이니까, 그 부인에게 남편을 말하려면 존칭을 붙여서 '바깥어른' '주인어른', 이라고 하면 좋습니다.

"바깥어른은 어디 가셨나요?", "주인어른은 연세가 어떻게 되셨나요?" 얼마나 좋습니까? 한문식으로 말하려면 '부군(夫君)'이 좋습니다. "부군께서 직장이 어딥니까?" 참 부드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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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버스나 전차 속에서 여자가 발을 괴고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러는 어떤 행사장의 단상의 점잖으신 분이 발을 괴고 앉습니다. 단하의 참석자를 무시하는 것 같아 보기가 싫은데, 그게 맞습니까?

남녀간에 다리를 괴고 앉는 자세는 禮스러운 앉음새가 아닙니다. 친구간이나 아랫사람과 좌석에서 휴식을 취하는것이라면 편한 자세가 좋을 수도 있지만 대중의 앞이나 의식행사 같은 정식의 정중해야 할 좌석에서 다리를 괴고 앉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리를 괸 자세는 건방지고 안하무인(眼下無人)한 무례로 비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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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성인과 같은 복장에 머리도 길렀지 만 분명히 미성년입니다. 그런데 존댓말로 말을 합니다. "이봐요, 여기가 어디죠". "지금 몇시입니까?", 자리를 양보하면 "고맙습니다."등등입니다. 더러는 한참 대화할 때도 있는데 계속 경어를 쓰십니다.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미성년은 미성년의 대접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고, 성년은 성년의 대접을 받아야 제 몫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년인지 미성년인지 분간할 수 없어서 어른들이 성년대접을 하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미성년인데도 아무 말없이 성년대접을 계속 받으면 아이들이 분수없이 어른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르신네, 저는 미성년입니다. 말씀을 낮추시지요"라고 자기가 미성년임을 밝히는 것이 떳떳한 禮스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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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의 부인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아주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어색해서 바른 호칭을 알고 싶습니다.

사실 예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난감한 질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생활관습으로는 내외(內外)법이 엄격했고, 따라서 시누이 남편이 처남의 부인을 직접 부를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통적인 호칭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친근하게 만나고 지내는 현대에도 적당한 호칭이 정립되지 못한다면 일상생활에 불편이 많을 것입니다.하지만 '아주머니'는 곤란합니다. 형의 부인이나 부모와 같은 항렬이나 서열 (위계)인 부인을 부르는 호칭을 처남의 부인에게 쓸 수는 없습니다. 처남의 부인이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처남댁(妻男宅·처남의 집사람이란 뜻)'이 좋고, 아이를 낳았으면 아이의 이름을 위에 붙여 '아무개 어머님', 또는 '아무개 자친(慈親)'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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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다 돌아가셔서 제사를 지내는데, 아버지는 공무 원서기관을 지내셨기 때문에 지방에 '顯考書記官 ○○○課長府君 神位'라고 씁니다. 아버지는 벼슬을 쓰면서 어머니는 '孺人'이라고 쓰려니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써야 합니까?

귀하뿐 아니고 많은 분들이 고심하는 부분입니다. 古禮에는 부인들도 남편의 직급에 따라 봉작(封爵·벼슬을 줌) 했으니까 당연히 지방에 봉작된 명칭을 썼지만 현대는 일체 부인의 봉작제도가 없으니까 어떻게 쓸지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은 서기관으로서 중앙 부처의 과장인데 부인은 '孺人'으로 쓴다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입니다. 원래 '孺人'은 최말직(最末職)인 정9품과 종9품의 벼슬아치의 부인에게 봉작하는 직첨이지만, 선비로서 벼슬하지 못한 '學生'의 부인들에게도 '孺人'을 쓰도록 양해·묵인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남편이 벼슬을 못했을 때 그 부인에게 쓰는 명칭입니다.

서기관이면 대개 5품관(正郞級)으로서 그 부인은 '공인(恭人)'의 직첩을 받을 수 있으나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까 '恭人'으로 쓸 수도 없습니다.

남편의 벼슬이름을 '서기관'이라 쓰는데 부인을 벼슬이 없는 이의 아내같이 '孺人'이라 쓰면 실례이고,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 '恭人'이라 쓸 수도 없으니 '夫人'이라 쓰는 것이 무난할 것입니다.

 

51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아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부고, 축 문, 등에 주상(主喪)을 죽은 사람의 큰아들로 합니까? 아니면 아버지로 합니까?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아들이 큰아들이면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있더라도 主喪은 아버지가 됩니다. 따라서 부고도 ○○○의 長子 ○○○가 사망했다.'고 쓰고, 지방이나 축문에도 '亡子秀才 ○○○라고 씁니다. 죽은 아들이 큰 아들이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主喪이 되고, 미혼이면 아버지가 主喪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에 차이를 두는 까닭은 큰아들은 아버지의 家統을 이어갈 아들이기 때문이고, 작은 아들은 分家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이 주상이 되는 것입니다.

 

52

아버지의 제사에 어머니를 함께 지내고, 어머니의 제사에 아버지를 함께 지내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내게 되는 데, 저는 부모님의 제삿날이 한날이라 1년에 한번밖에 못지냅니다.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는데 1년에 두 번 지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참으로 효성스러운 일입니다.

古禮에 의하면 음력으로 9월 15일에 이제라고 해서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데, 그 유래는 어떤 이가 아버지의 생신이 9월 15일인데 그 날을 그냥 보내기가 죄송스러워 제사를 지낸 일이 유래가 됐습니다. 미루어 굳이 1년에 두 번을 제사 지내고 싶으면 아버지의 생신날을 택해서 그 날도 제사를 지내면 죄송한 마음을 덜 수 있지 않겠습니까? 9월 15일에 이제를 지내는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53

저의 큰 형님은 백부에게로 양자 나갔습니다. 당연히 조 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는 큰형님이 지냅니다만 저의 부모님 제사도 큰형님이 장자라면서 당신이 지냅니다. 예법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록 생가의 큰아들이라 하더라도 양자 나갔으면 생가의 큰아들노릇을 못합니다. 귀하의 질문의 경우 백부에게로 출계해서 조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를 받드는 것은 조부모의 장손(長孫)이고 백부모의 장자(長子)가 된 것입니다.

남의 뒤를 이었으면 생가의 뒤를 이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둘째아들이 장자(長子)가 되어 부모의 제사를 받들어야 합니다.

 

54

저의 큰형님의 큰아들이 저의 부모님과 큰형님 내외분의 제사를 모시다가 죽었습니다. 죽은 조카의 아들이 어리기 때문에 저의 큰형님의 둘째아들인 작은 조카가 저의 부모님과 자기의 부모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장자손(長子孫)이 어려서 작은 자손이 지낼 바에야 저의 부모님 제사는 작은 아들인 제가 지내고 싶고, 작은 조카의 부담도 덜어줄 겸 모셔오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효성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법에 어긋나는 효도는 오히려 불효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는 장자손이 지내는 법이고 그것은 가통(家統)을 중시 해서입니다. 죽은 조카의 아들이 어리더라도 당연히 그 이름으로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합니다. 귀하의 작은 조카가 자기의 어린 조카인 장손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장성할 때까지 대행하는 것이니까 나쁠 것이 없고, 바람직합니다. 만일 작은 조카가 자기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귀하는 그것을 장자손의 이름으로 지내도록 바로 잡으시고, 작은 조카의 부담을 덜어 주고 싶으면 제사 비용을 보태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가통을 무시하고 제사가 형편을 쫓아 왔다 갔다하면 마침내 제사지낼 사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55

3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현재 어머니께서 노환이 위 중하십니다. 만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아버지 산소에 합장하려 하는 데 어머니를 어느 쪽에 모셔야 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현대인들은 매장시의 남녀위치가 혼동되어 장래 많은 문제가 야기될 것입니다. 산 사람은 남자가 동쪽이고 여자가 서쪽입니다만 죽은 사람은 남자가 서쪽이고 여자가 동쪽입니다.

東은 상좌(上座)의 左측이고 西는 右측을 말하므로 여자는 남자의 좌측에 위치해야 합니다. 묘지의 비석에 보면 여자를 표기한 밑에 0 左'라고 새기고 있는데 그것은 남자의 '左측에 붙였다'는 뜻입니다.

56

사회생활을 하려니까 상가에 인사갈 일이 많습니다. 직장의 상사나 동료에게 물어봐도 인사법을 잘 모르고 상가에서 보아도 우물쭈물하고 맙니다. 어떻게 인사해야 맞습니까?

문상을 간 사람이 부모상을 당한 상주에게 인사하는 말은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상사말씀 무엇이라 여쭈리까?"라고 하고, 상주는 "망극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만일 조부모나 백숙부모, 형제상을 당한 사람에게 인사하려면 "복제말씀 무엇이라 여쭈리까?" "얼마나 슬프십니까?"라고 인사하고, 상을 당한 사람은 "슬플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57

제가 장가를 갔는데 손위 처남이 저보다 나이가 아래입니다. 아내의 오빠이니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텐데 저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어떻게 형님이라 부를지 곤란합니다. 그래서 처남과 제가 만나면 서먹거려서 대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자는 혼인을 하면 시댁의 가족이 됩니다만 남자는 장가를 가도 처가의 가족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의 형의 아내인 손위동서가 나이가 적더라도 남편들의 위계를 따라 형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처가쪽 사람들과 아내와의 서열에 따라 대접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연령차이로 상대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의 직계존속인 장인 장모는 나이에 관계없이 부모같이 모시지만 기타의 아내 친척과는 사회적 사귐입니다. 따라서 손위의 처남이나 처삼촌, 손위의 동서라도 나이가 친구같이 지낼 정도이면 친구로 사귑니다. 귀하의 경우 형님이라고 부를 생각은 아예 말고, 나이가 10년이내의 차이라면 그 처남과 벗을 하셔야 합니다.

 

58

명절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글자로 보아 '茶'를 올려야 할텐데 우리나라의 제례에 茶를 쓰지 않고 술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차례'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중국에서는 간략한 명절의 제례에 葉茶를 올렸기 때문에 약식화된 간략한 제례를 葉禮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茶가 대중화된 상용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茶를 쓰는 대신 술(淸酒)을 쓰면서도 제례의 명칭은 '葉禮'라고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59

제사때 주가(작은 상)위의 술병옆에 정화수를 담은 현주 병을 놓습니다. 제상에 올리지도 않는 정화수를 왜 준비합니까?

우리나라에 술이 들어오기 전에는 조상을 받드는 제사에 우물에서 첫새벽에 뜬 정화수를 지금의 술대신 썼었습니다. 비록 술이 들어와서 술을 쓰지만 古禮에 사용했던 방법을 기려서 정화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60

전통제례의 축문식을 보면 연호(年號)를 쓰게 되었는데 근래에 보면 연호를 쓰지않고 간지(干支)로 그 해의 세차(歲次)만 씁니다. 전통의례를 행하면서 왜 연호를 쓰지 않습니까?

참으로 적절한 질문입니다.

1910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전에는 우리나라의 연호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국권을 빼앗기니까 우리나라에는 연호가 없어 굳이 연호를 쓰려면 일제(日帝)의 연호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마 적의 연호를 쓸 수 없어 연호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광복했고, 우리의 연호 '단군기원'이 있으니까 '維 檀君紀元○○○○年' 이라고 써야 합니다.

비록 공식으로는 '西紀'를 쓰지만 제례에는 우리의 연호인 '檀君紀元'을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성균관의 석전에서도 '檀君紀元'을 쓰고 있습니다.

 

61

전통적으로 기제사는 음력으로 돌아가신 날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양력을 쓰고 있고, 또 양력이 더 정확하니까 양력으로 날짜를 찾아서 지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닙니까?

전통적으로 음력으로 해왔고, 현재도 음력이 없어진게 아니고 존속하니까 음력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의 의견처럼 음력은 3년에 1개월이 틀리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지 않아 문제점이 많은데, 양력은 4년에 1일만이 틀리며 그것도 2월에 국한해서 못박았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기 때문에 양력이 더 정확한게 사실입니다. 기제사란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음력이든 양력이든 그 달의 그 날짜에 지내면 되겠지만 보다 계절 적으로 걸맞는 양력으로 지내더라도 망발은 아닙니다.

 

62

축문에 제사 달의 초하루와 제삿날의 일진을 쓰는데 근래 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양력으로 제삿날을 차릴 때는 더욱 그렇게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옛날의 문헌이나 역사기록들을 보면 날짜를 숫자로 안쓰고 간지(干支)로 기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습관과 관례에 따라 간지를 쓴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택일해서 지내는 제례는 대개 '丁'일이나 '亥'일을 택일하도록 했고, 상중(喪中)의 우제(虞祭)나 졸곡(卒哭) 등도 일진의 강유(剛柔)를 따져서 했기 때문에 일진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기제사의 일진을 쓰더라도 실제 돌아가신 날의 일진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점으로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 : 실제 돌아가신 날의 일진은 子였는데 금년의 제삿날의 일진은 壬 일수도 있다. ) 그래서 음력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전통방식에 의해 간지를 쓰더라도, 양력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간지를 안써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63

어떤 사람은 제사때나 상가의 빈소에서 절을 할 때 두 번 반이라고 합니다. 반 번의 절을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말을 더러 듣게 되는 데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은 있어도 횟수에 반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이란 아랫사람의 절에 대해 어른이 답배(答拜)한 경우 정중하게 하지 않고 간략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번은 없습니다. 생각컨대 남자의 배례에 읍(揖)을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거나 아니면 부인들이 절을 한 다음에 공경하고 사양하는 뜻으로 약간 허리를 굽히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읍이 나 허리를 굽히는 것은 간략한 禮의 표시이지 절(拜)은 아닙니다. 혼동없으시기 바랍니다.

 

64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조상의 산소 옆으로 옮기려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머니께서 어른께서 살으시는 근처로 이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어른께 인사를 여쭐 것입니다. 산소를 옮길 때도 그냥 옮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지금 산소를 팔 때와 새로 산소를 뫼신 뒤에 아무런 의식도 행하지 않는다면 도리에 어긋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도리 대로하는 것이 바로 예절입니다. 우리의 전통예절은 건전한 상식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오랜 생활관습에 의해 정립한 것들입니다.

조상의 산소옆에 다른 산소를 쓸려면 간략하게 제수를 차리고 '동강조선묘고사(同岡祖先墓告사)'를 하고, 새로 모신 곳에서도 간략한 제수를 차려 '축문(祝文)'을 지어 읽어 산소 쓰는 일이 끝났음을 고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전통예절은 이렇게 일치합니다.

 

65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며칠 후면 49일이 됩니다. 주 위에서 49일제(祭)를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전통예절에도 49일제가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49일제란 '제(祭)'가 아니고 '재(齋)'입니다. 즉 죽은지 49일만에 지내는 제사란 말이 아니고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 49일이 되면 '일곱번의 생사를 거쳐 각 과보를 감지하고 三界·六道에 가서 태어난다'고해 7일씩 7번이 되는 49일에 불교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례절차인 제례로서는 '49일제'가 없고 불교의 종교의식으로 '49일재'가 있습니다. 혼동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제가 아니고 재이므로) 49일재는 가정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고 사찰에서 불교의식으로 치릅니다.

 

66

저의 아버지께서 생전에 손자 보시기를 무척 기다리셨는 데 돌아가신 후에야 제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어떤 방법으로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합니까?

갸륵하신 효성입니다. 어찌 아들을 낳은 일 뿐이 겠습니 까? 집안에서 있었던 큰 일은 조상에게 고하는 절차가 '유사즉고(有事則告)'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원래는 사당을 뫼신 큰 집에서 고하는 축문(告문)을 지어 고했는데 현대는 사당이 안계시지만 조상의 위패(신위)를 임시로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사실대로 고할 수 있습니다. 귀하의 경우도 기제사를 지낼 때같이 신위를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아이를 데리고 "누구의 아내 ○○성씨가 ○월 ○일 아들을 낳았기에 고하며 뵈옵니다"고 고하시면 됩니다.

 

67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이 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옷을 지어 태우고 잔치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古禮에 의하면 돌아가신 父母의 생신에 관한 의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제인데 일반적으로 음력 9월 15일에 사당에서 父母의 위패만 모시고 지내는 제사로써 원래의 유래는 처음 '이제'를 지낸이의 아버지의 생일이 9월 15일이었다는 데에 연유합니다. 또 하나는 사당에 '생신제고사(生辰祭告사)'를 하는 것인데 사당에 뫼신 모든 신위의 생신제로써 李退溪 선생은 禮가 아니라 했고, 金沙溪 선생과 宋尤庵 선생은 인정의 발로라고 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조상의 생신에 잊지 않고 의식을 갖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명한 분의 탄신 百주 행사를 사회적으로 치르기도 하는데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회갑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인정 상 차마 어려운 일입니다. 마땅히 '이제' 지내듯이 위패(신위)를 뫼시고 가까운 친척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추모한 다음 함께 음복하면 자연히 추모하는 경건한 잔치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복을 지어 태우는 일은 속설(俗說)일 수는 있으나 전통의례에는 없는 일입니다.

 

68

직장에서 사무실을 이전하는데 고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의당 축문을 읽어야 하는데 한문서식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마침 글 솜씨가 있는 동료직원이 있어 우리말로 축문을 지을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현행되는 각종 축문이나 고사가 한문식으로 된 것은 그런 서식이 정립된 시기가 한문전용시대였고, 그렇게 써서 읽어도 알아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문서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세대의 제례행사에 한글로 된 우리말 축문을 지어 읽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다만 제사나 고사의 취지가 분명히 담기고 조상이나 만물을 주재하는 천지신명에게 공경을 다하는 내용이면 되겠습니다.

 

69

문화민족일수록 전통문화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예 절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근래의 시중에 나오는 예절 책을 보면 '예의 바르다'고 정평이 있던 우리집의 방법과 너무도 다릅니다. 아무리 가가례(家家禮)라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나라는 家家禮라고 해서 집집마다 또는 고장마다 예절에 차이가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 家家禮를 방치해 둘 수만은 없습니다. 높은 산이나 깊은 강에 막혀서 왕래가 수월치 못해 사투리가 생길 정도로 생활양식이 서로 다르던 때와는 다릅니다. 당연히 어느 쪽이든 통일된 의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고집하면 통일이 안됩니다. 논리적인 근거에 의해서 모두가 따라 올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하겠습니다.

 

70

근래 방송이나 신문잡지등의 보도에 보면 제상을 진설하는데 있어서 西쪽에 밤, 東쪽에 대추를 놓는 방법과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놓는 방법이 섞여서 소개됩니다. 전통의식을 배워서 하고싶어도 어떤 방법이 옳은지를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시원한 해답을 주십시오.

매우 절실한 문제입니다. 사실 제례에 있어서 가가례라는 양상이 두드러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추 밤 감 배, 즉 棗栗枾梨의 순서를 주장하는 경우의 이유는 대추는 씨가 하나니까 임금이고 밤은 한송이에 세톨이 들었으니까 3정승이고 감은 씨가 여섯 개니까 6판서고 배는 씨가 여덟 개니까 8도 관찰사에 해당해 벼슬의 높이에 맞춰 임금 정승 판서 관찰사의 순으로 놓는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옳다고 가정하면 개인의 제사에 임금을 상징하는 대추를 쓴다는 것이 불경스러우며, 官制가 바뀌면 그 비유가 맞지 않을 수도 있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밤을 西쪽 대추를 東쪽에 놓고 붉은 것을 東쪽 흰 것을 西쪽에 놓는다는 東棗西栗과 紅東白西의 주장은 한문적인 논리에 의한 것입니다.

밤은 서쪽의 나무(栗)라고 쓰며, 두렵다(慄)는 뜻이 있고, 神主도 밤나무로 깎으므로 陰방, 즉 西쪽에 해당되고, 대추의 붉은 색은 하늘 즉 陽을 뜻하며 혼례에 폐백을 대추로 하는 의미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한다는 뜻이므로 東西南北중 陽방은 東쪽이고, 또 東쪽에서 해가 뜨므로 부지런하다는 의미와 합치해 대추는 東쪽에 해당되며,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붉은 대추가 놓인 東쪽에서부터 붉은 색의 과실을 놓고, 흰밤이 놓인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과일을 놓는다는 紅東白西가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주장을 비교할 때 東棗西栗, 紅東白西가 棗栗枾梨보다 더 논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71

제수 진설법을 보면 머리와 꼬리가 있는 생선등을 어떻게 놓는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동두서미(東頭西尾)라 하고, 어떤 이는 서두동미(西頭東尾)라고 합니다. 또 생선을 놓을 때 등과 배를 어느 쪽이 신위 쪽을 향하게 놓는가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맞는 것입니까?

분명히 말해서 권위있는 禮書에는 고기나 생선을 놓는 위 치는 정해졌지만 머리와 꼬리, 등과 배를 어느 쪽을 향하게 한다고 정해진 곳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원칙이 없이 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 여러 가지 俗說이 있어 다르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禮書에는 정해진 데가 없지만 전통예절의 총본산인 성균관의 석전 대제에서는 東頭西尾, 즉 머리가 東쪽이고 꼬리가 西쪽이 되게 진설합니다. 그 이유는 신위가 北쪽에 계시니까 東西로 길게 놓아야 할 텐데 東이 陽方으로 위이기 때문에 머리를 東쪽으로 가게 놓는 관습이 정립된 것으로 믿어집니다.

등과 배는 배가 신위쪽으로 가게 놓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등은 뒤이며 밖이고 배는 앞이며 안이므로 앞과 안쪽을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타당해서입니다. 또 등을 보이면 나가는 것이고 배를 보이며 들어오는 것이므로 배를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72

우리의 전통예절은 격식이 중요시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례는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되는데 왜 격식이 그렇게 중요시됩니까?

당연합니다. 인간이 하는 표정, 언어, 행동이 모두 격식에 의해서 이뤄져야 상대가 속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격식이란 그 사회에서 공통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자리를 걷고 소제하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밥먹고 옷을 챙겨 입고 신을 신고 대문을 나설 때까지의 절차를 순서대로 기록한다면 祭禮절차보다 더 복잡하겠지만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수월하게 행합니다. 그 이유는 격식이랄 수 있는 절차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례절차를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절차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성스러운 사람은 격식을 알아서 그대로 행합니다. 우리가 먹는 상차림도 밥, 국, 수저, 간장, 김치 찌개등을 놓는 자리가 격식이 있습니

다.

우리가 양식을 먹을때도 스푼 나이프 포크를 쥐고 쓰는 법등 격식을 따라서 행합니다. 그런데 왜 조상을 위하는 제상의 차림은 아무렇게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모든 의식 절차를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격식을 모르는 사람의 변명이고, 그런 변명을 하는 사람은 정성이 모자라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3

신혼여행에서 돌아 올 때에 신랑과 신부가 친정과 시댁중 어디로 먼저 가야 할까요? 이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예가 많습니다.

친정으로 먼저 가면 "이제 우리집 사람인데 왜 친정부터 가느냐?"고 시댁에서 괘씸하다고 말하고, 시댁으로 먼저 가면 "평생 살 것인데 친정좀 다녀가면 안되는냐?"고 친정에서 서운해 합니다. 古禮대로 親迎禮를 하면 신랑집에서 禮를 올리니까 문제가 없고, 전통관습대로 하면 신부집에서 禮를 올리고 첫날밤을 차린 뒤에 시댁으로 오는 于禮를 하니까 그 절차가 확실한데 신식혼례에는 신랑댁이나 신부댁이 아닌 어중간한 예식장에서 혼인예식을 하고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신혼여행(첫날밤)을 떠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첫째 분명히 말해서 혼인예식이란 궁극적으로 첫날밤, 즉 合宮이라고 해서 男女가 몸을 합치기 위한 절차입니다. 따라서 첫날 밤을 차리는 격인 신혼여행은 우리 전통관습에 의할 때 신부댁에서의 절차적 행사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남녀가 합치는 첫날밤은 여자에게 있어서 중대한 변혁적 행사이므로 그 후에 같은 여성이며 閨房의 禮를 가르친 어머니와의 대화가 절실한 것이니 그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아무리 혼수를 미리 시댁으로 보냈다 하더라도 비밀스럽고 자질구레한 신변잡품들은 신부가 직접 가지고 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친정에 있을 것입니다.

넷째, 딸을 마지막 보내고 생소한 시댁에 보내면서 아무리 예물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상과 같은 연유로 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신랑과 신부는 신부댁으로 가서 한밤을 지낸 뒤에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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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女간에 어른에게 절할 때 평소에는 한번 씩 하고, 제사 지낼 때는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하는데, 회갑(回甲)때는 몇 번씩 해야 합니까? 한번씩 하자니 너무 가벼운 것 같고, 제사때와 같이 하자니 산 어른에게 제사의 절을 할 수 없어서 그럽니다.

그런 질문이 많습니다. 古禮에보면 절을 많이 할수록 극 진한 공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절의 기본횟수는 남자는 陽이기 때문에 최소 陽數인 1회이고 여자는 陰이니까 최소 陰數인 2회입니다. 그것은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2번 신부는 4번절하지만 각기 기본횟수인 신부가 2번, 신랑이 1번의 절을 두 차례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제사의 절은 극진한 공경일 뿐 아니라 상대가 陰府로 가신 귀신이니까 남자가 陰數의 절을 하기 위해 2번 하고, 그것이 기본 횟수의 배이기 때문에 여자도 기본횟수의 배인 4번을 하는 것입니다. 回甲도 평소와 다른 儀式이며 극진한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남자는 2번, 여자는 4번 해야 할 것입니다. 폐백때의 절도 신부는 4번씩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절을 받으실 어른이 절의 횟수를 줄이라고 명하시면 말씀에 따라 하는 것이 禮에 맞는 것입니다.

 

75

男左女右란 말을 많이 쓰고 실제 좌석배치에도 원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左右란 左右로 위치를 잡아야 할 자신들의 左右입니까? 예를 들어 신랑·신부가 설 때나, 회갑에서 부모가 앉을 때 자기들의 左右인가, 아니면 손님이 볼 때의 左右인가 말입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실제로 누구의 左右인가 혼동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左가 보는 이의 右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左右란 당사자의 左右도 아니고 보는 이의 左右도 아닙니다. 禮節에 있어서 '누구의' '어디의'라고 기준을 정해서 左右를 말할 때는 당연히 그 특정기준의 左右이기 때문에 혼동이 없지만, 특정기준이 없이 左右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특정 기준이 없을 때의 일반적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일반적 기준은 '上座'입니다. 左右에서의 左는 東이고 右는 西를 의미하며 上座는 北쪽이기 때문에 당연한 논리입니다. 上座가 北이라는 것은 冠婚喪祭의 四禮에서 공통된 것이고, 그 상좌의 左가 東이며 男子이고, 상좌의 右가 西이며 女子입니다. 따라서 回甲잔치에서는 헌수를 받는 당사자가 앉는 자리가 上座이기 때문에 父母가 상좌에 앉으면 左측인 東에 父가 앉고 右측인 西에 母가 앉게 됩니다. 혼인예식에서는 병풍을 친곳, 즉 주례석이 上座이기 때문에 주례의 左측인 東에 신랑이, 주례의 右측인 西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의 자리는 東쪽이고 신부의 자리는 西쪽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이때의 東西는 上座의 左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가 되는 것입니다. 제례에서는 神位를 뫼신 곳이 上座이기 때문에 신위의 左가 東이고 右가 西입니다. 따라서 男子자손은 신위의 左 측인 東쪽에서 北향해 서고, 女子자손은 신위의 右측인 西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입니다.

 

76

요사이 명절에 한복을 입는 사람이 많아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것을 보면 양복입고 갓을 쓴 것 같아 개운치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복에는 미투리나 짚신을 신어야 걸맞는 다고 생각하기가 싶군요. 그러나 우리가 양복을 입기 전, 그러니까 한복이 유일한 우리의 의상일 때도 서민들은 미투리나 짚신 아니면 나막신을 신었지만 사대 부나 여유있는 상류층에서는 가죽신도 신었고, 가죽신에 징을 박은 진신도 신었습니다. 옛날의 가죽신과 지금의 구두가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가죽신이라는 데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77

금년 신정에 TV를 보았더니 각 정당이나 단체의 신년하례식이 방송되는데 한복두루마기에 목도리를 두른채 의식에 참석한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목도리도 우리 한복의 정장에 속하는지 궁금합니다.

목도리는 방한하는 장신구이지 통상복장의 일부는 아닙니다. 비단 한복뿐아니라 양복을 입었을 때도 실내에 들어가면 목도리를 끌러야 깍듯한 예절이라 하겠습니다. 신년하례식 같은 의식행사에 한복에 목도리를 두른채 참석한다면 방한장비를 한채 의식에 참석한 것이 됩니다. 당연히 실내나 의식행사에서는 목도리를 풀러야 합니다.

 

78

곧 설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에게 절을 하기 위해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옳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절은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동작입니다. 자기가 공경하는 대상에게 공경의 동작을 하면서 어른보고 "절 받으라", "앉으라"라고 수고를 시켜서는 아니됩니다.

공경해야 할 어른을 뵈옵는 즉시 공경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어른이 앉았으면 더욱 좋겠지만 서 계시면 어떻고, 누워 계시면 어떻습니까? 절을 받기 위해 수고를 시키지 말고 절을 올리는 것이 옳습니다.

 

79

저는 아직 20대 초반의 신입사원입니다. 지난 신정에 중 학교 때 각별히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과 직장의 아버지같은 상사에게 세배를 갔었습니다. 선생님과 상사가 모두 무척 반기며 고마워 하셔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모두 저의 절을 그냥 앉아서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요?

절을 하는 예절도 중요하지만 절을 받는 예절도 깎듯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릴 때 가르친 제자라도 성년이 되어서 하는 절에는 반드시 반절로 답배를 해야 합니다. 직장의 상급자도 하급자가 미성년이 아닌 성년이라면 그 절을 답배해야 합니다. 직장의 상급자도 하급자가 미성년이 아닌 성년이라면 그 절을 답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에 의하면 '얘' '너' '해라'하며 절을 그냥 받던 아랫사람이라도 관례(성년례)를 올리고 나면 '자네' '하게'를 하며 반드시 그 절을 맞아 주었습니다. 근친관계가 아니면 성년의 절은 반드시 답배를 해야 합니다.

 

80

제가 알기에는 명절의 차례가 설 한식 추석 등 세 차례라 고 생각됩니다. 한식과 추석의 차례는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설의 차례도 산소에 가서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茶禮란 조상에게 명절의 특식을 먼저 드리는 제례입니다. 그러니까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 한식에는 화전을 올린다고 하겠습니다. 전에 사당에 조상의 위패를 뫼시던 때는 사당에서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는 그냥 성묘만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 법이었고, 더러는 어떻게 산소에 빈손으로 가겠느냐면서 간단한 제수를 준비해서 산소에서도 지냈습니다. 결국 자손의 정성이 지극하면 두 번 차례를 지내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당이 없어지고 산소만 계시니까 집에서는 지내지 않고 산소에서만 지내는 것이 근래의 풍속입니다. 한식은 언 땅이 녹을 때이고, 추석은 초목이 자라고 장마끝이라 산소의 안위가 궁금해 반드시 성묘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설은 몹시 추운 때라 성묘하기가 마땅치 못하며 설의 특식인 떡국은 국물이 있고, 뜨겁게 끓여야 하기 때문에 산소에서는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의 차례는 집에서 신주, 지방, 사진등 위패를 모시고 지냅니다.

 

81

저는 설날만 되면 세배돈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세배돈 은 몇 살 까지 주며 얼마나 줘야 합니까?

세배돈은 절값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치고 칭찬하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 저것 분별하는 나이가 되면 세배돈을 주는 것이 오히려 어린애 취급 같아서 불쾌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형이나 누이에게도 절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나이를 먹더니 어른스럽고 절을 잘한다."고 칭찬하면서 다과나 세배돈을 주는 것이니까 부담이 되는 액수라면 더욱 곤란합니다. 아이들이 부담없이 즐겁게 받고 쓸 수 있는 적은 돈이어야 합니다.

 

82

상주가 자기를 말할 때 '고자(孤子)' '애자(哀子)' '고애자(孤哀子)' 등을 쓰는데 그 세가지가 어떻게 다릅니까?

어머니는 계시고, 아버지만 돌아가셨을 때는 '孤子'이고, 아버지는 살아 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哀子'이며, 누가 먼저이든 두 분이다 돌아가시면 '孤哀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주가 자기를 自稱하는 것만 보아도 누구의 상(喪)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哀子'는 공식적으론 상가(喪家)를 대표해서 쓸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셨을 때 '哀子'인데 그런 경우의 상가의 주인(主喪)은 아버지인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고나 장사지낸 후의 인사장 등에 '哀子'라면서 아들의 명의로 하면 주상인 아버지를 제쳐놓는 일이며 심하게는 능멸하는 것이 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私信등에 '哀子'를 씁니다.

 

83

TV나 예절책에 소개되는 제상의 과실차림을 보면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西쪽에서부터 놓고, 기타 조과나 유과를 그 다음 東쪽에 놓기도 하고, 東쪽에 대추 西쪽에 밤을 놓고 東쪽에서부터 붉은색,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생과를 놓고 중앙에 조과나 유과를 놓기도 합니다. 또 과실의 접시수도 어떤 이는 짝수이고, 누구는 홀수입니다. 어떻게 해야 맞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과실을 놓는 위치는 어느 예서(禮書)에도 명시된 곳이 없고, 접시수도 율곡(栗谷)선생은 상당한 이유의 설명이 없이 홀수를 예시했고, 퇴계(退溪) 사계(沙溪)선생은 과실은 음(陰)인 땅에서 나므로 陰수인 짝수로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굳이 접시 수를 말한다면 지산(地産)은 陰수로 한다는 이유가 제시된 짝수가 합리적이라 할 것입니다. 놓는 위치도 대추 밤 감의 순서를 주장하는 사람은 대추는 씨가 하나니까 임금이고 밤은 한 송이에 세 톨이 들었으니까 삼정승이고, 그러므로 벼슬의 높낮이에 맞춘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민가의 제례에 임금을 상징하는 대추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논리적인 근거가 박약합니다. 그러나 대추는 東쪽, 밤은 西쪽은 신부가 폐백에 밤과 대추를 가져가는 까닭이 대추는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라는 뜻이므로 아침 즉 東쪽에 해당되고, 밤은 글씨도 西쪽의 나무(木)라 쓰고, 신주도 밤나무로 깎으므로 귀신은 두렵다고 西쪽에 해당되어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붉은 대추를 놓은 東쪽에서부터 붉은색, 깎아서 흰 밤을 놓은 西쪽에 서부터 흰색을 놓고 중앙에 조과나 유과를 놓되 역시 홍동백서(紅東白西)로 놓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입니다.

 

84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각종 모임에서 上下석의 좌석 구분을 없애고 있어 각 단체나 사회적 모임에서도 좌석배치에 논란이 많습니다. 上下석의 구분은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없애야 합니까?

시기에 적절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좌석배치에 있어서의 上下석의 구분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고, 설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비록 같은 모양의 의자를 둥글게 놓았다 하더라도 같이 앉아야 할 사람 중 가장 상급자가 앉는 자리가 상석이 되는 것이고, 그 상석을 기준으로 차례가 지어집니다. 그래서 의자가 같다든가 둥글게 좌석 마련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좌석준비를 해 놓으면 하급자들이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 더욱 혼란하고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또한 원탁이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계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모두 같다"는 인식을 갖는 배치인데 상급자와 하급자가 원탁에 앉았다고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상하급이 이런 식으로 해서 구분이 없어진다면 우리사회는 혼란과 무례(無禮)의 늪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85

실천예절을 읽으면서 현행 신식 예식장에서의 신랑·신부 위치가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전통혼례나 종교의식등에 비추어 보아도 잘못 되었는데 왜 고치지 않는지요?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인데도 신식 혼인예식장에서는 신랑과 신부를 죽은 이의 위패나 묘지의 시체매장 위치에 세우고 있습니다. 예식장에서 고치지 않는다면 혼인하는 신랑·신부 당사자가 제자리를 찾는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뫼시는 신주나 지방을 보면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 조상을 씁니다. 묘지에 시체를 매장할 때도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의 시체를 묻습니다. 그런데 현행 예식장의 상태가 신랑이 西쪽이고 신부가 東쪽이라 죽은 이와 같은 위치입니다. 신랑과 신부들이 전통혼례나 모든 의식에서와 같이 산사람의 위치에 서려면 주례의 좌측인 東쪽에 신랑이 서고 주례의 우측인 西쪽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각자가 챙길일입니다.

 

86

저는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와서 대접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남편의 친구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습니다. 남편의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불러야 할 일 이 많을 것입니다. 남편의 상급자나 또는 사회적 직급이 있으면 그 직급을 불러도 됩니다. '과장님' '대리님' 만일 그런 직급명이 없으면 '선생님'이 가장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 선생님이 어색하다고 생각되시면 '씨'도 좋습니다. 그러나 '씨'를 붙일 때는 성만 말해 '김씨' '박씨'라고 하면 안되고 반드시 성명을 다 말해야 합니다. '김갑동씨' '이몽룡씨'라고 말입니다. 될 수 있는대로 '선생님'이라 부르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87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님인 큰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보다 손위인 고모부, 세분이 함께 계신 자리에서는 누구에게 먼저 절을 해야 합니까? 차례대로라면 고모부, 큰아버지, 아버지의 순서인데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 어른이 함께 계실 때는 절하는 순서에 원칙이 있습니다. 그 순서는 먼저 직계존속의 최상위자부터 男·女, 다음은 방계친척의 상위세대 순으로 하되 같은 세대에서는 촌수가 가까운 순서의 男·女, 그 다음이 친척이 아닌 사람은 연령순으로 절하면 됩니다.

귀하가 질문하신 경우는 직계존속은 아버지뿐이므로 아버지에게 먼저 절하고, 다음이 친족인 큰아버지, 마지막으로 고모부에게 절해야 합니다. 절의 순서에 대한 원칙은 古禮의 服制의 輕重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경우도 원칙은 아버지에게 먼저 해야 되지만 아버지의 직계존속보다 아버지에게 먼저 절하면 아버지가 불편하시대서 직계존속은 웃세대부터 합니다.

만일 연령순으로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친구, 큰아버지, 고모부, 아버지, 당숙, 아버지의 친구, 형님등 열분이 한 자리에 계시고 전부 절을 할려면 ⑴할아버지 ⑵아버지 ⑶증조할아버지 ⑷증조할머니 ⑸큰아버지 ⑹당숙 ⑺고모부 ⑻형님 ⑼할아버지의 친구 ⑽아버지의 친구 순으로 절해야 할 것입니다.

 

88

어떤 책에서 보니까 10촌 이내를 일가라고 한다 했고, 다른 책에서는 8촌이 넘어야 일가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일가의 범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일가란 엄격한 의미에서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혈족(血族)을 총칭하는 것이고 더러는 혈족남자의 배우자를 일가의 범주에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하의 질문 취지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일가가 아니라 일반적 대화 중 호칭(呼稱)으로서의 '일가'에 대한 것이라 이해됩니다. 대화 중에 "저 분은 저의 일가입니다"라고 말하는 일가를 10촌이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 10촌이라는 한계기준이 모호합니다. 일반적으로 친족의 친소를 구분하는데는 8촌을 한계기준으로 하는 바 그 이유는 8촌은 죽었을 때 복을 입는 유복지친(有服之親)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8촌이내를 일가라 말하는가, 아니면 8촌이 넘어야 일가라고 하는 가가 문제입니다. 8촌이내는 근친으로서 남에게 말할 때의 호칭이 특정되어 있습니다. 8촌 형제면 "삼종입니다", 6촌형제면 "재종입니다"라고 말하지 일가라고는 않습니다. 따라서 '일가'라고 말하는 경우는 8촌이 넘어 특정의 호칭으로 말하기가 곤란한 혈족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89

저의 아버지께서는 회갑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어머니의 회갑을 당해 조촐한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말하기를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잔치도 같이 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살아 계신 어머니의 회갑잔치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잔치를 겸한다면 얼른 보면 극히 효성스러운 것 같지만 깊은 의미로는 불효라 할 것입니다. 生死가 다른 두 분을 함께 뫼시고 잔을 드리는 헌수(獻수)를 한다는 말인데 산 어머니 옆에 죽은 아버지의 위패(신주)를 뫼셔야 할테니 살아계신 어머니가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원래 돌아가신 부모의 생신에는 이제를 지낼 수 있으므로 죽은 아버지의 회갑에는 이제를 성대히 지내고 손님을 청해 아버지의 유덕을 기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어머니의 회갑잔치는 어머니에게만 헌수하고 잔치도 어머니의 회갑잔치만 해야 합니다.

 

90

父母님의 회갑에 헌수를 할 때 자손이 향해서 왼쪽에 아버지, 오른쪽에 어머니를 앉으시게 하는가 본데 맞는지요?

회갑잔치의 좌석배치는 병풍치고 병풍 앞에 당사자가 앉고 그 앞에 상을 차린 다음 자손들이 당사자를 향해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禮節의 東西南北은 병풍친 것이 北쪽이고 자손들은 南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이 됩니다. 이런 방위로 보아 귀하가 말씀하신 父母님의 위치는 아버지가 西쪽이 되고 어머니가 東쪽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남자가 西쪽 여자가 東쪽에 위치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위치입니다. 제사때 지방을 쓸려면 향해서 왼쪽인 西에 남자, 향해서 오른쪽인 東에 여자의 신위를 쓰고, 묘지에 시체를 매장 할 때도 신주와 같이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가 묻힙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父母님을 죽은 사람의 위치에 뫼신다면 그런 불효가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아버지를 자기들의 왼쪽인 東쪽, 어머니를 자가들의 오른쪽인 西쪽에 뫼셔야 합니다.

古禮에 보면 시부모가 새 며느리의 폐백을 받을 때 구동고서(舅東姑西), 즉 시아버지는 東쪽 시어머니는 西쪽에 앉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禮節에서의 東西南北은 상좌(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해 상좌의 左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쪽이 되는 것이며, 生者는 東쪽을 上으로 해 남자가 東쪽으로 가고, 死者는 西쪽을 上으로 해(以西爲上) 남자가 西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91

실천예절의 내용에 '이조(李朝)'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조선'으로 고쳐 주십시오. '李朝'란 日帝가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기 위해 '李氏의 부족국가(部族國家)'란 뜻으로 쓰인 것으로 한국인이라면 쓸 수 없는 낱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예절을 바로잡는 잡지에 우리나라를 멸시하는 '李朝'란 용어는 쓸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먼저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면서 뜻높은 충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는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사용한 시대가 단군(檀君)의 朝鮮, 기자(箕(奇)子)의 朝鮮, 위만(衛滿)의 朝鮮, 李氏가 王이었던 朝鮮이 있었고 지금은 북한(北韓)이 '朝鮮'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朝鮮'이라고 하면 어떤 朝鮮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때문에 역사학자(歷史學者)들은 檀君. 箕(奇)子, 衛滿의 3朝鮮은 고대조선(古代朝鮮)이라 하고, 李氏가 王이었던 朝鮮을 근세조선(近世朝鮮)으로 구분하고 또 古代朝鮮을 왕조별(王朝別)로 나눌 때는 건국왕조(建國王朝)의 姓을 따라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제(日帝) 이전에는 李氏가 王이었던 朝鮮을 그냥 '아선(我鮮)'라고도 했습니다. 즉 우리나라(조정)란 뜻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조선(我朝鮮)'이라고 널리 쓰였지요. 그러나 본 실천예절에서 더러 '李朝'라고 표기하는 경우는 우리나라라는 뜻이 아니고 '李氏朝鮮의 朝鮮'이란 뜻으로 쓰여지고 있고, 그것을 줄여서 '李朝'라고 쓰였습니다.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92

시댁 시누이의 남편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근래에 '고모부'라고 흔히 말하는데 아무래도 바른 호칭이 아닌 듯 해서 묻습니다.

고례(古禮)에는 처남댁과 시누이남편 사이는 엄격한 內外법이 있으므로 서로간에 직접 부를일이 없었는데, 요사이는 내외법이 엄격하지 않아 서로 부를 경우가 많은데서 호칭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요사이 궁여지책으로 '고모부'라고 부르는데 고모부란 자기의 자녀가 부르는 호칭이지 처남의 아내인 자기가 부르는 호칭은 아닙니다. 물론 시누이 남편을 자기의 자녀에게 말할 때는 '너의 고모부'라고 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옛날에 시누이 남편을 말하는 경우란 제3인칭으로 말할 때가 전부였습니다. 그때는 시누이 남편의 성을 붙여 '金서방' '李서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직접 부를 때는 '님'을 붙여 '金서방님' '李서방님'이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93

저는 택시기사입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은 성별 직업 연령 등이 다양한데 손님에 대한 호칭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좋은 호칭이 있습니까?

그렇겠습니다.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고 해서 '얘' '너' 할 수 도 없고, 남녀 연령등 천태만상의 고객을 그때마다 격에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찌 택시뿐이겠습니까? 음식점, 접객업소, 기업체, 은행, 병원, 상점등 자기나 자기의 사업을 이용하는 고객을 맞는 업소에서는 모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님'이 제일 좋습니다. '손(客)'은 고객이란 뜻이고 '님'은 그 '손'을 높이는 말이니까 '고객(顧客)님'을 우리말로 '손님'이라 하면 적격입니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신분이야 어떻든 '손님' 이라 불리워서 기분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94

男左女右란 男子는 왼쪽 女子는 오른쪽이란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혼인 예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주례를 향해 섰을 때와 하객에게로 돌아서서 인사할 때는 서로 위치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질문이십니다. 저희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이 '男左 女右'에 관한 것이니까요. 첫째, '男左女右'에 左右는 어떤 의식장소에 참석한 사람들 각자의 좌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上座의 좌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禮書에도 "좌우란 존장(上座)의 좌우"라 고 못이 박혀 있습니다. 혼인예식장의 상좌는 주례석입니다. 그러니까 혼인예식장 안에서의 좌우는 주례의 왼쪽이 左이고 주례의 오른쪽이 右가 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위치를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주례를 향할 때나 하객을 향할 때나 모두 신랑은 주례의 왼쪽, 신부는 주례 오른쪽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左右란 東西라는 뜻입니다. 예절에서는 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北쪽이 제일 높고(北極星이 있으니까), 北쪽에서 南향해야 햇볕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른이 北쪽에서 南향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소의 형편상 어른이 자연의 北쪽에 위치할 수 없을 때는 편리한 대로 아무쪽에나 위치하더라도 어른이 계신 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上座의 左측은 東쪽이 되고 右측은 西쪽이 됩니다. 그러므로 男左女右란 男東女西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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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삶이 끝나는 것인데 "초상(初喪)났다"고 '처음'이란 뜻의 '初'자를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죽음에 '初'를 쓰느냐 는 것이군요. 禮書에 보면 君子의 삶은 道를 행하는 것이므로 君子의 죽음은 바로 道를 마침(終)이 시작된다고 해서 '초종(初終)'이라고 하고, 小人의 삶은 육신(肉身)이 살아 있는 것이므로 小人의 죽음은 바로 肉身이 죽어 썩음을 의미해 '死'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小人의 죽음은 '초사(初死)'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상(喪)은 道가 끝나는 '종(終)'도 아니며 육신이 썩는 '사(死)'도 아닌 중간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그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이를 君子냐 小人이냐를 구분하지 않고 중간 의미인 '없어짐이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초상(初喪)'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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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신문에 나는 부고를 보면 남편이 죽었을 때는 아들보다도 앞에 '미망인(未亡人)'이라 쓰고 부인의 이름을 쓰는데, 부인이 죽었을 때는 아무데도 남편의 이름을 쓰지 않는 경향입니다. 부인이 죽었을 때의 남편의 이름은 어디에 쓰는 것이 옳습니까?

남편이 죽었을 때는 부인은 일단은 '주부(主婦)'가 되지만 그 주부의 자격도 큰 며느리에게 물리게 되었습니다. 예서(禮書)에 의하면 부고에 이름을 쓰는 사람은 '主喪'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래는 부고 자체가 죽은 이의 친척과 친지에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상주들의 친지에게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주의 이름을 모두 쓰는 것이 상식화되었습니다. 만일 미망인을 제일 먼저 쓸려면 부고의 서식도 "아무개의 아버님 누가... "라고 하지말고 "아무개의 남편 누가..."써야 합니다. 그런데 부고는 "아무개의 아버님 누가... "라고 쓰면서 미망인의 이름을 제일 먼저 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당연히 主喪이 큰 아들이나 큰 손자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미망인을 써야 할 것입니다. 부인이 죽었을 때는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살아있는 남편이 主喪입니다. 그래서 부고도 "아무개의 부인 누가..."라고 시작되고 이름을 쓸 때도 제일 먼저 "主喪 夫○○○"라고 쓰고 그 다음에 아들이 이름을 써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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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喪家)에 인사를 가서 보면 옛날과 달라 성복(成服)을 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成服전후를 알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옛날과 같이 상복을 챙겨 입는 것도 아니고 혼백을 접거나 명정을 거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 成服여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영좌(靈座)에 망인의 사진을 뫼시니까 그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쳤는가 아닌 가로 구분하게 하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입니다. 즉, 염습을 해 입관을 하기 전에는 망인의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치지 않고, 입관을 한 다음에 검은 리본을 ∧자로 걸치는 것입니다. 조문하는 손님이 망인의 사진을 보면 성복 여부를 금방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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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家에서 상주들은 거적자리를 깔고 짚벼개를 옆에 놓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상주는 왜 거적자리에 앉고 짚벼개를 베는지 그 의미도 모르고 흉내만 낸다면 진정한 예절이랄 수가 없습니다. 원래는 짚벼개가 아니라 흙벼개를 베게 되었습니다. 거적자리는 풀밭을 의미하고 흙덩어리의 벼개는 맨땅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자식들은 큰 죄인이며 차마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맨땅 풀밭에서 흙덩어리를 벤다. 즉 草土에 몸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갸륵한 孝道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근래 방석까지 깔고 있는 상주들이 있음은 생각할 일입니다.

 

99

얼마전에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밤샘까지 한 친 구가 아버님의 상을 당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른이 저의 아버지와 친구분이라 저는 아버지를 뫼시고 조상을 갔었습니다. 부의금은 아버지의 명의로 내고,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조상만 하고 바로 왔습니다. 다음에 상주인 제 친구가 "나는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밤샘까지 했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인사도 안왔다"고 서운해 했습니다. 부의록에도 저의 이름은 없으니 참으로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상가에 부의록만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의록이야 부의금을 기록하는 장부니까 부의금을 내지 않는 조상객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상가에는 반드시 吊客錄이나 吊慰錄이 부의록 외에 따로 있어야 부의금에 관계없이 모든 조문객을 기록해야 합니다. 吊客錄은 男子가 죽었을 때 吊喪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이고, 吊慰錄은 망인이 女子일 때 吊門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입니다. 귀하가 질문한 경우 吊客錄이 있었더라면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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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양(孃)'이라고 부르던 동년배의 여직원이 혼인을 해 기혼녀가 되었습니다.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갑자기 그것도 동년배인데, '여사'라고 부르기가 쑥스러워서 그럽니다.

'여사'라고 부르는 것을 쑥쓰럽게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미혼인 여자를 '양(孃)'이라 불렀으니까 기혼인 여성은 당연히 '여사'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사'에도 두가지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女史'와 '女士'입니다.

'女史'는 여자인 사관(史官)이란 뜻으로 옛날 왕실에 여자의 사관을 두어 왕후의 측근에 있으면서 왕후의 언어와 동정을 기록하는 직책이었습니다.(周禮) '女士'는 성년례(成年禮)이 계례를 치른 성인인 여자를 높이는 호칭입니다.(家禮) 따라서 '女史'는 기·미혼에 관계없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여자를 이르는 호칭이라 할 것이고, '女士'는 성년, 즉 기혼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동년배라도 기혼여성이니까 '여사(女士)'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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